2009년 8월 27일 목요일

내 눈에 콩깍지

연애시절에는 누구나 장윤정이 부른 노래 가사처럼 콩깍지가 씌워지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 어느 미친 여자가 5만 원 짜리 지폐로 빵빵한 지갑을 꺼내는 모습도 아니고, 노래방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김동률의 노래에 마음을 실어 지랄을 하는 것도 아니며, 일주일이 넘도록 매일같이 내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다려준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순간에 ‘뿅’ 하고 가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로 뭐가 씌었긴 씌었었나 보다. 무엇 하나 볼 것 없어 보이는 남자가 우연히 해질 녘 춘천의 한 호숫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그 모습이 내 눈에 포착이 되었어.

 

‘그래! 잠시만 지켜보자.’ 그 남자, 많이도 답답했었나 보다. 피우던 꽁초를 공지천 개울로 튕겨버리더니 곧바로 장초를 다시 꺼내 입에 물더라고.

 

바로 그 때였어. 환상이었을까? ‘내 귀의 캔디’가 아닌 ‘내 눈의 그 남자’가 되어 내 머릿속을 하얗게 인두로 지지기 시작했던 거야. 뜨거운 충격의 영상이 얼마동안이나 지속되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아무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뇌리에 그토록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었던 것은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어. 그 모습을 태어나서 그날 처음 보게 된 거야.

 

담배를 걸고 있던 그 남자의 가늘고 기다란 왼손의 검지와 장지가 노을빛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빛나던 그 때 그 모습. 어스름이 깔리는 공지천 조각공원이 온통 밝아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던 그때 그 영상.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을 그려보면 가슴이 뛰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내게는 충격이었어. 그런데 왜 그 때는 그 남자가 담배를 걸고 있는 살점도 하나 없는 빈약한 손가락이 폐병환자나 되는 것처럼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절대 아니다.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남자와 둘이서만 그 먼 곳까지 떠났다는 자유와 해방감이 내 마음을 풀어놨는지 몰라. 멋진 겨울 호수를 보면서 한 잔 기울인 알콜 탓인지도 몰라. 어쩌면 그 두 가지 모두가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도 몰라. 몰라. 몰라. 아! 그것도 아니면 대체 그 무엇이 있어 내게 씹어 먹지도 못할 환상을 심어놓았더란 말이냐?

 

어찌되었건 그 지랄 같이 다가와 화인을 남겼던 그 모습, 그 영상은 염병할 놈의 콩깍지였던 게 틀림없어. 그 때, 춘천 조각공원에서 씌었던 콩깍지가 13년이 지난 오늘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워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어. 무척이나 놀랐지.

 

바로 이 모습이었어. 이 모습에 반해서 지금까지 담배를 끊으라고 강요하지 못했지. 그래도 임신 중에는 태아와 산모에게 좋지 않아서 그랬는지 베란다로 나가서 피우더니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얼마 전에는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아빠!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가 검은색으로 변해서 아파한데요”라고 말하더라고. 어찌나 기특하던지 유치원에서 매일 놀기만 하는 건 아닌가 봐.

 

그 소릴 들었던 울랑이도 조금은 싫었던지 한동안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더니만 요즘에는 뭔 안 좋은 일이 있는지 하루에 한 갑을 더 피우는 것 같아. 그것도 다른 담배는 순해서 싫다고 하면서 그 독하다는 88담배를 말야.

 

나도 술을 좋아해서 누가 나보고 술을 끊으라고 하면 아무리 내 건강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짜증은 날 거야. 그래서 쫓아다니면서 금연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젠 가족과 울랑의 건강을 생각해서 끊지 못하겠다면 줄이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울랑씨! 내 목소리 들려요? 조금만 줄여줘요. 부탁이에요. 네?

댓글 9개:

  1. 글 참 잘쓰십니다.. 마음이 진솔하셔서 그런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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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넷테나 - 2009/08/27 22:26
    좋게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각나는대로 쓴 글이에요.

    나중에 못 썼다고 흉보시기 없기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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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담배를 끊게하는 비책이 하나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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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별 - 2009/08/28 21:32
    네 꼭 알려주세요.

    울랑에게도 통하는 비책이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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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솔직히 비책이라고 할수는 없는데요... 참고정도 하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여 글을 남깁니다.

    첫번째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의지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전제로 하구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담배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담배에서 나는 연기와 냄새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손에서 나는 니코틴 냄새...

    그리고 담배를 피우면 발생하는 후유증이라할 수 있는 목의 가래...



    담배를 끊겠다고 생각한다면...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냄새와 가래를 집중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담배를 피웠다는 가정 하에 손에서 냄새가 난다...

    가래가 끓는다...



    그리고 가능한 술자리를 피하도록 해야하구요... 담배를 피우는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도 될수 있는 한 멀리 하도록 해야합니다.



    흔한 방법으로는 벌금으로 강제하는 것도 얘기들을 하는데... 이건 전 좀~ ^^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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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별 - 2009/08/30 10:46
    감사합니다.

    울랑에게 한번 이글을 보여주고 행동으로 옮기게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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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와 글 재미있게 잘쓰시네요. 좀 배우고 싶네요, 전 워낙 글을 못써서 흑. 쓰다보면 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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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최선 - 2009/09/01 09:26
    저도 울랑에게 많이 배우고 있답니다.

    글은 쓸수록 실력이 향상 된다고 알고 있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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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trackback from: 요즘애들 다그래!!!
    여름 내내 덥다는 핑계로 저녁에 운동 한번 하지 않던 내가<?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들과 모처럼 운동하러 나갔다. 배드민턴 채를 가지고 잠깐 공원에서 운동을 하다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산책하기로 했다. 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3Km정도 걸으면서 돌아오는길 다시 배드민턴을 치는곳으로 돌아와서 아들에게 운동하는 법을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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