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4일 금요일

아이가 꾸는 꿈이 엄마의 미래다

난 어렸을 때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글쎄... 잘 생각이 나질 않네.

그만큼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고, 가슴에 담아 왔기 때문일까?

 

 

갑자기 큰아이가 “엄마는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라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를 빛내며 물어 오더라.

너무나 갑작스러웠는지 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며 탄식만 흘려 보냈어.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래! 내가 어려서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이 드디어 생각난 거야.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되고 싶었어.

그리고 술 저마시고 꼬장 부리는 동네 놈팽이 놈을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꿈꾸었던 거야.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만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그보다 어렸던 시기에는

독수리오형제의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수나가 되고 싶기도 했어.

아무튼 우리 큰아이한테는 “선생님” 하고 대답을 했지.

 

“우리 귀염둥이 공주들은 뭐가 되고 싶나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나도 물어 보았지.

큰아이는 벌써 이태 전부터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에 번복이 없었어.

다만 작은아이한테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

 

처음 가수가 꿈이라는 작은아이한테

가수는 노래는 기본이고 춤도 엣지있게 잘 춰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 말을 듣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라이브로 쌩쑈를 하더라고.

아빠 컴퓨터방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미쳤어’를 부르는 거야.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의자 등받이에는 턱없이 부족한 다리를 억지로 타넘기면서

콧잔등에 땀이 맺히도록 열심히 ‘미쳤어’의 노래와 춤을 끝까지 보여주는 거야.

마지막에는 땀알이 송송 맺힌 얼굴을 내게 들이 밀면서 섹시하지 않았냐고 하더라고.

 

‘흥! 섹시가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이야? 그런 말을 아무데나 붙이냐고?’

 

내심 콧방귀를 뀌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

그러면서도 ‘아! ~ 나도 울랑한테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섹시하다는 말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망도 가져봤지.

 

“어이, 딸! 섹시하다는 게 뭔 말인지는 알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작은아이한테 물어봤더니

엄마는 그것도 모르냐는 의미의 핀잔을 눈치로 주면서

 

“손담비 언니처럼 예뻐 보이고 멋져 보이는 거.” 라고 짧게 답하더라고.

 

‘이런 닝기미 쉬불... 손담비? 아놔~ 니가 손담비면 나는 조선의 국모다.’

내가 미치지. 아니 미쳐 버리고 싶더라고. 정말 미쳐버리거나 돌아버리거나 하고 싶었어.

 

가식적인 웃음을 내보이면서 내가 대답한 말은

 

“섹시까지는 몰라도 아주 멋졌어. 귀엽기도 했고.”

 

그 말을 들은 작은아이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 들더니 문을 걸어 버렸어.

이미 우리 아이들은 귀엽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예쁘다는 말보다 섹시하다는 말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렇다는 것은?

이런! 여덟 살, 여섯 살짜리 어린 아기들도 저렇게 섹시함에 연연해하는데

35년의 인생을 살아온 나는 도대체 뭐하고 살았나 싶어 서글픔이 밀려오더라고.

얼마나 못나게 살아왔으면 여자라는 존재를 우리 아기들한테 배워야 하냐고.

 

그런 작은아이가 거실로 나오는 걸음이 왠지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거야.

딱히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이상해 보이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어.

아동복 모델이나 지을 것 같은 이상한 포즈도 취하고 말이야.

 

그래서 어떡해? 물어봐야지.

아! 그랬더니 글쎄 투잡족이 되겠단다.

뭐라더라? 낮에는 모델을 하고, 밤에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될 거라나?

그러면서 살도 빼야 되니까 가끔 있었던 고깃집에서의 식사는 앞으로 사양한다더라.

 

얼마나 웃기던지...

아니 그게 6살짜리 아기 입을 통해서 나와야 될 말이냐고?

얼어붙은 내 입술로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어.

 

그런데 말이야.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계속 듣고 있으려니 뭔가가 “쿵”하고 뒤통수를 때려오는 거야.

 

‘아! 왜 나는 그 때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열정적이지 못했을까?’

 

왜 갑자기 그런 자괴감이 밀려 들어왔는지...

 

지금으로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무엇이 되는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야.

다만 부모니까 아이들이 하고 싶고, 꾸고 싶은 꿈을

앞장서서 이끌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막지는 말아야하지 않겠어?

여건만 허락된다면 두 손 걷어붙이고, 두 발 내 달리면서

아주 거센 치맛바람이라도 일으키고 싶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늘 난 새로운 꿈을 어른이 되어 다시 꾸게 되었어.

 

엄마의 꿈, 그리고 저기 거실에서 발바닥 긁어가며 TV를 보고 있는 아빠의 꿈은

우리 아이들이 소망하는 꿈을 소중하게 키워가고 이끌어줘야 한다는 거지.

 

얘들아... 엄마 마음 변하기 전에 너희가 꿈꾸는 거 빨랑빨랑 이루거라.

내 맘이 변하면 니들 꿈이고 뭐고 다 팽개쳐불고

엄마 행복 찾아 맛난 거 먹고 좋은 곳 구경하러 쌔빠지게 구경 다닐라니께. 알긋냐?

댓글 4개:

  1. 순간, 요즘의 내 꿈은 뭐였지~?

    나는 내 꿈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달려가고 있었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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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도희 - 2009/09/04 00:32
    이 시간에도 열심히 달려가시겠죠.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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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혼이지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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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AXX - 2009/09/08 00:46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예쁜사랑 키워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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